“그땐 없어서 못 탔죠” 알고 보면 캐스퍼보다 더 느렸다는 그 시절 국산차들

오토모빌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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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08 오전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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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없어서 못 탔죠” 알고 보면 캐스퍼보다 더 느렸다는 그 시절 국산차들

탄탄한 준중형 세단 시장
중형 차체에 소형 엔진?
초기 준중형차 살펴보니

현대 스텔라 / 사진 출처 = 네이버 남차카페 “서울ll체다”님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준중형 세단은 가장 대중적인 세그먼트 중 하나다. 2010년대부터 소형 SUV 열풍이 불어닥치며 그전까지 존재감이 상당했던 중형 세단의 입지가 크게 줄었지만 준중형 세단의 판매량은 별다른 변동 없이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심지어 이때는 소형 세단 시장이 사라지고 경차 시장마저 쪼그라든 시기였다.

준중형차는 일반적으로 소형차와 중형차 사이의 체급에 배기량 1.6L 미만의 엔진을 얹은 차를 뜻한다. 하지만 1980년대의 초창기 준중형 세단은 중형 세단급 차체에 소형차의 엔진을 탑재한 형태로 주행 성능이 빈약했다. 그럼에도 소비자 반응은 꽤 좋았는데 저렴한 가격과 유지비로도 중형차를 타는 느낌을 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초기 준중형 세단은 차급이 곧 계급인 한국 특유의 사회 분위기를 제대로 공략한 세그먼트였던 셈이다. 당시에 한창 잘 팔렸던 1세대 준중형차들을 살펴보았다.

현대차 스텔라
시작은 좋았다

포드 코티나 5세대 영국 사양 / 사진 출처 = “Barons Auctions”
현대 스텔라 / 사진 출처 = 네이버 남차카페 “서울llminkyomangoo”님

1983년 출시된 현대자동차 스텔라는 포드의 라이센스 생산 모델이었던 포드 코티나 5세대의 플랫폼을 기반으로 개발되었다. 현대차가 자체 개발한 보디와 미쓰비시로부터 빌려온 파워트레인을 얹었으며 포니를 디자인했던 이탈리아 디자인 스튜디오 ‘이탈디자인 주지아로’가 디자인을 담당했다.

기반 모델인 포드 코티나가 후륜구동 세단이었던 만큼 스텔라도 FR 레이아웃이 적용되었다. 파워트레인은 미쓰비시의 1.4~1.6L 가솔린, LPG 새턴 엔진과 3~4단 자동, 4~5단 수동변속기가 맞물렸다. 100% 독자 개발 모델은 아니었지만 당시 높은 부품 국산화율과 합리적인 가격으로 어필해 출시 3개월 만에 계약 1만 건을 돌파하는 등 출발이 좋았다.

품질 이슈 한가득
대우차 로얄 XQ

현대 스텔라 / 사진 출처 = 네이버 남차카페 “서울llroyce”님
대우 로얄 XQ 전기형

하지만 스텔라는 출시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온갖 품질 이슈에 시달렸다. 개발 당시 포드 코티나의 라이센스 만료일이 1년밖에 남지 않아 무리하게 양산화를 추진한 데다가 주문량은 예상을 훨씬 웃돌아 품질 관리마저 소홀해졌기 때문이다. 결국 당시 현대차 역사상 최대 규모인 1만 5천 대를 리콜하기에 이르렀다. 그동안 쌓은 신뢰가 무너져내린 현대차는 1985년 개량형 1.5L 엔진을 탑재한 연식 변경 모델을 내놓았으며 꾸준한 품질 개선으로 신뢰의 탑을 다시금 쌓아 올렸다.

스텔라와 같은 해에 출시된 대우자동차 로얄 XQ도 준중형차 시장의 초기 멤버였다. 상대적으로 가격 부담이 컸던 로얄 시리즈의 진입 장벽을 낮추기 위해 출시한 로얄 XQ는 대우차가 독자 개발한 1.5L XQ 엔진을 탑재했다. 스텔라와 마찬가지로 중형차와 비슷한 크기의 모델을 소형차 세금으로 탈 수 있다는 점을 앞세워 적극적으로 마케팅했다.

가장 큰 차체
가장 약한 출력

대우 맵시에 탑재된 1.5L XQ 엔진 / 사진 출처 = “보배드림”
대우 로얄 XQ 후기형

하지만 1세대 준중형 세단의 전형적인 문제점들은 로얄 XQ 역시 예외가 아니었으며 허약한 동력 성능 문제가 특히 심하게 부각됐다. 당시 경쟁 차종인 스텔라보다 큰 수준을 넘어 준대형급에 가까웠던 로얄의 차체에 1.5L 엔진 엔진을 얹는다는 건 넌센스나 마찬가지였다. 스텔라의 1,439cc 엔진이 92마력을 냈던 데에 반해 로얄 XQ는 85마력에 불과했다. 에어컨을 켜고 언덕길을 오르다 차가 퍼지는 건 일상이었으며 “절름발이 세단”이라는 별명이 붙는 등 굴욕이란 굴욕은 모두 겪었다.

그러나 이러한 넌센스 조합은 의외로 적지 않은 판매량으로 이어졌다. 중형차보다 약간 작은 수준의 스텔라와 달리 장관급 관용차인 레코드 로얄 차체에 소형차 세금 혜택이라는 메리트는 소비자들을 끌어오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페이스리프트 모델이 출시되었던 1985년에는 당시 상위 모델인 로얄 프린스의 부품을 가져와 외관을 튜닝하는 사례가 보도되기도 했다.

기아차 캐피탈
경제 호황기 수혜자

기아 캐피탈 / 사진 출처 = 네이버 남차카페 “홍성llFerrari”님
기아 캐피탈 / 사진 출처 = 네이버 남차카페 “홍성llFerrari”님

로얄 XQ가 단종되고 세월이 흘러 1989년, 기아자동차는 콩코드의 차체에 1.5L 엔진을 탑재한 캐피탈을 출시했다. 상위 모델인 콩코드와 차별화는 물론이며 주 수요층을 공략하기 위해 젊은 분위기를 강조한 디자인이 특징이었다. 바디 컬러와 통일한 3분할 라디에이터 그릴과 한껏 끌어올린 도어 몰딩이 대표적인 요소다.

사전계약을 실시한 첫 달 8천 대에 가까운 계약 건수를 기록했는데 차별화한 디자인 전략이 먹혔을 뿐만 아니라 당시 호황이었던 내수 경제 상황도 한몫했다. 출시 시기를 잘 타고난 모델이었던 셈이다. 이 기세를 이어 과거 현대 스텔라처럼 출시 3개월 만에 판매량 1만 대를 넘기는 등 기아차의 첫 도전치고 꽤 성공적인 성과를 보였다.

우수한 성능으로 어필
상향 평준화 유도했다

기아 캐피탈 엔진룸

기아차는 캐피탈도 콩코드와 마찬가지로 경쟁 모델 대비 탄탄한 주행 성능을 적극 강조했다. 실제로 당시 경쟁 차종들을 앞서는 성능을 보여 자연스럽게 소비자들을 끌어올 수 있었다. 캐피탈 초기형에는 마쓰다에서 빌려온 1.5L 가솔린 싱글 캠 엔진이 탑재되었는데 최고출력 95마력과 최대토크 14.2kg.m 모두 스텔라와 로얄 XQ를 앞서는 수치였다.

덕분에 경쟁 차종에 비해 차체 크기가 가장 작은 편이었음에도 스텔라와 로얄 시리즈의 낮은 성능에 질린 소비자들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끌어냈다. 캐피탈의 심상치 않은 기세를 감지한 현대차와 대우차는 각자 파워트레인을 포함한 대대적인 상품성 개선에 뛰어들어 준중형차 평균 성능이 조금씩 상향 평준화를 이루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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