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 K퇴직연금을 묻다 에필로그①] 장기운용 토양 위한 ‘당근과 채찍’, 퇴직연금 선진국 만들었다

비즈니스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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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10 오후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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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 K퇴직연금을 묻다 에필로그①] 장기운용 토양 위한 ‘당근과 채찍’, 퇴직연금 선진국 만들었다

2024년 당신의 노후 계획은 안녕하십니까. 올해 한국사회는 퇴직연금을 도입한 지 20년차를 맞았다. 하지만 퇴직연금이 퇴직 이후 안정적 삶을 보장하는 진정한 의미의 ‘퇴직연금’이 되기 위해선 여전히 가야할 길이 멀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에 비즈니스포스트는 특별취재팀을 꾸려 퇴직연금 선진국을 찾는다. 우리보다 앞서 제도를 도입한 호주, 일본, 미국의 퇴직연금 장단점을 알아보고 국내 퇴직연금제도가 가야할 방향을 모색한다. <편집자 주>

– 에필로그 글 싣는 순서
① 장기운용 토양 위한 ‘당근과 채찍’, 퇴직연금 선진국 만들었다
② 은행권 퇴직연금 적립금 200조 돌파, 안정성 넘어 수익률 잡기 경쟁 본격화”
③ 독보적 수익률로 퇴직연금 시장 존재감 키우는 증권업계, 향후 사업 핵심은

호주 시드니의 랜드마크인 오페라하우스와 하버브릿지 모습. 호주는 강력한 규제를 바탕으로 퇴직연금 선진국으로 자리잡았다.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퇴직연금 제도가 ‘성공’하는 길은 장기적 운용에 있다.”

비즈니스포스트가 5월 중순부터 3주 동안 퇴직연금 선진국으로 평가받는 호주와 미국, 옆나라 일본을 직접 찾아 각 국가의 퇴직연금 관련 협회와 기관, 자산운용사 등 연금 사업자, 교수 등 학계 관계자로부터 일관되게 들은 퇴직연금 제도 성공비결에 관한 대답이다.

이 대답은 어떻게 보면 너무나 교과서 같은 말이다.

퇴직연금 자체가 30년, 40년 뒤 직장에서 은퇴했을 때를 대비해 월급의 일부를 차곡차곡 모으는 돈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장기운용은 당연히 따라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돈이라는 것은 수만 명의 사람이 있으면 수만 개의 사정이 있다. 퇴직연금도 다르지 않다.

이런 돈의 흐름을 특정한 제도 아래 묶어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퇴직연금을 은퇴 전에 인출하지 않고 정말 노후를 위해 적립하도록 하는 ‘연금(일정 기간마다 지급되는 돈)화’가 성공적 제도의 열쇠이자 과제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현지에서 직접 보고 들은 연금 백만장자의 나라로 불리는 호주와 미국의 성공사례는 각자의 토양에 맞는 제도적 장치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닫게 했다. 디폴트옵션 선배이자 확정기여형(DC)시장으로 변화의 길을 함께 걷고 있는 일본의 고민은 한국 퇴직연금 제도의 길잡이가 될 수 있다.

미국 뉴욕 브라이언트 공원을 거니는 사람들의 모습. 미국은 확정기여(DC)형 퇴직연금 제도 401(k)를 성공적으로 정착시켜 세계 퇴직연금 선진국 가운데 하나로 평가된다. <비즈니스포스트>

◆ 호주도 미국도 퇴직연금 수익률의 해답은 ‘장기운용’

호주와 미국은 둘 다 퇴직연금 연 평균 수익률이 7~9% 수준을 보이는 연금 선진국이지만 제도 운영방식은 매우 다르다. 현지에서 직접 퇴직연금 사업자, 관계자들을 만나보니 차이점이 더욱 확연하게 느껴졌다.

호주는 일찍이 1992년 슈퍼애뉴에이션(퇴직연금) 의무가입 제도를 도입했고 정부 주도의 엄격한 성과테스트로 시장 경쟁을 유도하고 있다.

미국은 아직까지 퇴직연금 가입조차 의무가 아닌 선택사항이다. 미국 확정기여형(DC) 퇴직연금 대표격인 401(k) 제도를 봐도 가입부터 퇴직연금을 운용할 투자상품과 세제혜택 적용방식, 퇴직연금 계좌 적립금액까지 개인의 선택에 맡긴다.

다만 ‘규제’와 ‘자율’, 정반대의 원칙 아래 쌓아올린 두 나라의 퇴직연금 제도가 공통점을 보이는 부분이 있다.

바로 장기운용을 유도하기 위한 ‘당근과 채찍’을 총동원하고 있다는 점이다.

호주와 미국은 둘 다 정부가 퇴직연금의 수익률을 높이기 위한 제도적 발전에 힘써왔다. 호주는 슈퍼애뉴에이션 펀드들의 경쟁으로, 미국은 애초 장기운용에 초점을 맞춘 자산분배전략을 바탕으로 한 타깃데이트펀드(TDF)를 중심에 두는 방식을 통해서다.

연 7~9% 수준의 ‘달콤한’ 수익률을 통해 퇴직연금을 중도에 인출하기는커녕 더 많은 자금을 적립하게끔 유도한 것이다.

호주와 미국은 동시에 퇴직연금 적립금에 관한 세제혜택과 중도인출 때 강력한 세금 ‘패널티’를 적용했다.

이를 통해 사회적으로도 퇴직연금은 은퇴 뒤 노후생활을 위한 자산이라는 인식이 확실하게 뿌리내렸다.

퇴직연금의 장기운용과 수익률은 서로 맞물려 있는 요소들이기도 하다.

세제혜택을 받는 자산을 장기간 복리로 굴리면 수익률은 저절로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또 수익률이 높아져 자산의 규모가 커지면 중간인출보다 연금으로 활용하려는 유인도 커진다.

5월 비즈니스포스트가 뉴욕 맨해튼에서 만난 이병선 모간스탠리 퇴직연금사업부 이사는 미국의 수많은 연금 백만장자 탄생 비결을 묻자 “특별한 해답이 있는 게 아니라 장기적 관점에서 투자하면 된다”고 대답했다.

호주, 미국과 달리 확정급여형(DB)이 80%를 차지하는 일본도 퇴직연금 장기운용에 관한 고민은 같다.

일본 도쿄 니혼바시에서 비즈니스포스트가 만난 타부치 에이치로 전 노무라자산운용 연구원은 “미국은 정부와 민간 모두 주식을 통한 장기투자가 퇴직연금 자산운용에 가장 효율적이라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며 일본 역시 퇴직연금의 장기운용을 위해 정부 개입이 더욱 필요하다고 봤다.

야지마 이타루 조부대학 경영학과 교수는 “퇴직연금은 최소 30년은 바라봐야 하는 긴 프로젝트”라며 연금에서 제일 중요한 요소로 지속성을 꼽았다.

일본 도쿄역의 모습. 일본 퇴직연금시장은 확정급여(DB)형 비중이 80% 수준으로 높지만 최근 젊은 층을 중심으로 퇴직연금 투자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확정기여(DC)형 확대가 예상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 한국 퇴직연금 제도적 틀은 갖췄다, 진짜 ‘노후자산’ 만들기 과제

한국 퇴직연금 제도는 올해 20살을 맞았다. 사람으로 보면 성인의 시기에 들어섰다.

제도 도입 20년을 거치면서 확정급여형(DB)과 확정기여형(DC), 개인형퇴직연금(IRP) 제도를 구축했고 지난해에는 디폴트옵션도 도입했다.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는 2024년 1분기 기준 385조7천억 원으로 400조 원을 바라보고 있다. 고용주는 근로자 월 소득의 8.33%를 회사 내부가 아닌 외부에 퇴직연금으로 의무적으로 적립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금융감독원의 퇴직연금 통계, 퇴직연금사업자 수익률 비교공시 등을 통해 정보 접근성도 높은 편이다.

고용주가 근로자가 내는 적립금만큼 ‘매칭’해 퇴직연금을 넣어주는 미국, 퇴직연금 제도 자체가 복잡한 일본과 비교해 어떤 점에서는 제도적 장점이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다만 퇴직연금이 ‘연금’으로 제대로 기능하느냐의 측면에서 보면 아직 미흡한 부분이 많다.

2023년 한국에서는 퇴직연금 계좌 52만9664개가 수령을 개시했다. 이 가운데 퇴직연금을 ‘연금’으로 수령한 계좌는 5만5천여 개, 10.4%에 그친다.

2021년(4.3%), 2022년(7.1%)와 비교하면 연금 수령 계좌가 많이 늘어나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90%, 47만4천여 계좌의 수령인은 퇴직연금을 일시금으로 받아갔다.

2023년 기준 최근 5년, 10년 퇴직연금의 연간 환산 수익률도 각각 2.35%, 2.07% 수준에 그친다. 2023년 연간 소비자물가지수가 3.6% 상승한 것을 고려하면 물가상승률에도 못 미친다.

지난해 연금 수령 계좌의 평균 수령액은 1억3976만 원, 일시금 수령 계좌의 평균 잔액은 1645만 원이다.

퇴직연금 수익률 향상과 연금화는 떼어 생각할 수 없는 과제라는 점을 입증해준다.

결국 한국 퇴직연금시장도 장기운용을 늘리고 연금 수익률을 높이기 위한 제도적 당근과 채찍이 필요했다.

김경록 미래에셋자산운용 고문은 “퇴직연금 같은 생애 자산관리는 철저하게 시스템이 작동하도록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며 “네덜란드는 퇴직연금을 기금형 제도인 ‘콜렉티브 DC’로 운영하고 있고 더 나아가 퇴직연금 인출방식으로 종신연금을 의무화한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국내 은행권의 한 관계자는 “한국 퇴직연금시장은 퇴직금을 담보하기 위한 장치에서 최근 안정적 노후를 위한 자산으로 인식이 변하고 있다”며 “디폴트옵션 등에서도 수익률 제고를 위한 상품 교체 절차 개선 등이 필요해 보인다”고 바라봤다. 박혜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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