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못 죽어” 휘발유 2ℓ 들고 지하철로…’343명 사상’ 최악 참사[뉴스속오늘]

머니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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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18 오전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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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못 죽어” 휘발유 2ℓ 들고 지하철로…’343명 사상’ 최악 참사[뉴스속오늘]

2003년 2월 18일 당시 대구 지하철 화재 모습.
2003년 2월 18일 당시 대구 지하철 화재 모습.

20년 전인 2003년 2월18일. 대구 지하철 1호선 중앙로역에서 방화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으로 192명이 사망하고 151명이 부상을 당해 총 343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때문에 이 참사는 대한민국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역대 최악의 지하철 사고로 손꼽힌다.

사고는 50대 남성에 의해 시작됐다. 뇌졸중으로로 치유할 수 없는 장애를 얻게 돼 죽음을 결심한 김대한(당시 56세)은 ‘혼자 죽기 억울하다’는 생각으로 범행을 준비했다.

이날 9시 30분 경. 그는 대구광역시 달서구 송현동에 있는 송현역에서 1079열차 지하철에 올라탔다. 김대한은 송현역 근처에 있는 주유소에서 휘발유 2리터를 구입한 상태로 열차에 승차했다. 현재는 철도안전법 상 화재를 일으킬 수 있는 위험 물질을 열차에 소지하고 탑승하는 것이 제한돼 있으나 당시에는 그런 법이 없었기 때문에 김대한은 아무런 제지 없이 열차에 승차할 수 있었다.

9시 51분 경. 1079열차가 전역인 반월당역을 출발하자 김대한은 라이터를 만지작 거리기 시작했다. 그 때 반대편에 앉아있던 승객 전모씨가 “왜 자꾸 라이터를 키는 거예요!” 라고 큰 소리로 항의하자 김대한은 행동을 멈추려는 듯 했다.

그러나 김대한은 1079 열차가 대구광역시 중구 중앙대로에 있는 중앙로역에 정차하는 순간, 미리 들고 있던 석유 플라스틱 통에 불을 붙였다. 주변 승객들은 당황해했고 승객들이 그를 제지하려는 찰나, 불이 그의 옷에 옮겨붙자 놀란 김대한은 휘발유 통을 바닥에 던졌다. 불이 삽시간에 전동차 의자와 바닥 천장에 옮겨붙어 결국 수 초만에 큰 불이 발생했다. 당시 열차는 의자부터 바닥까지 전부 불에 타는 가연재 소질이었기 때문에 불이 번지는 데는 크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소방안전대책 전무..미흡한 대처가 희생 키워

다행히 당시 1079 열차는 중앙로역에 정차 중이었고 많은 승객들이 열려 있던 출입문을 통해 대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처구니없는 대처가 화재를 악몽 같은 참사로 키웠다. 당시 열차차량에 대한 소방안전대책은 전무한 실정이었다.

후속 열차 진입을 막고 신속히 진화와 구조 활동을 해야 했지만 상황 전파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화재 발생 유무를 알릴 의무가 있었던 1079호 열차 기관사는 당시 불을 끄려고 노력했지만 곧바로 사령실에 상황을 보고하지 않았다. 결국 대구역에서 출발한 1080호가 맞은편 선로로 들어왔고 불은 1080호 열차가 몰고 온 바람을 타고 더 확산했다. 여기서 1080호 기관사 역시 잘못된 선택으로 사고를 더 키웠다.

그는 승객들이 다 대피했을 것이라 막연히 생각하고 열차 내부를 확인하지 않은 채 키를 뽑아들고 대피했다. 전동차는 키를 뽑으면 출입문이 모두 닫히는 구조. 그 탓에 열차 내에서 기관사의 지시를 기다리던 많은 승객들이 숨지거나 다쳤다.

(대구=뉴스1) 공정식 기자 =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 20주기를 이틀 앞둔 16일 대구지하철 1호선 중앙로역에 마련된 추모 공간을 찾은 시민들이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며 영면을 기원하고 있다. 2023.2.16/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대구=뉴스1) 공정식 기자 =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 20주기를 이틀 앞둔 16일 대구지하철 1호선 중앙로역에 마련된 추모 공간을 찾은 시민들이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며 영면을 기원하고 있다. 2023.2.16/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방화범 김씨 무기징역 ‘뇌졸중으로 사망’..사고로 매뉴얼 생겨

많은 사람이 희생된 사건임에도 처벌할 법적 근거가 없어 기관사와 종합사령실 관계자 몇 명 정도만 과실과 직무유기로 처벌되는 수준으로 사건은 마무리됐다.

방화범 김대한은 1심에서 실행 직전까지 범행을 망설였던 점, 잘못을 뉘우치고 있는 점,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던 점 등을 이유로 “사형을 정당화시킬 수 있는 특별한 사정이 없다”며 김대한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그는 항소심에서도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김대한은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후 범행 1년 뒤인 2004년 8월 31일 수감 중이던 진주교도소에서 지병인 뇌졸중으로 숨졌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가 건축 안전 시스템을 바꾸었던 것처럼, 이 사건 이후로 철도 안전 시스템 자체가 대수술을 거쳤다고 할 만큼 개선됐다.

전동차 내장재를 불에 잘 타지 않는 소재로 바꾸도록 하고 재난 관련 법령 정비, 소방방재청 설치 등 국가적 재난 관리 매뉴얼이 갖춰지게 됐다. 대구지하철참사 이후에는 소방방제청이 출범했다. 내무부 소방국을 떼어내 소방과 방제를 전문적으로 맡는 기관이 탄생한 것이다.

하지만 사건을 경험한 생존자는 아직도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또 사고 희생자들과 그에 관계된 유족들은 현재까지도 이 사고를 잊지 못하고 있으다. 충격으로 자살하거나 정신 이상이 발생한 사람, 우울증으로 사망에 이른 사람 등도 적지 않았다. 그리고 당사자들이 아닌 대구 시민들 중에서도 지금도 특히 중앙로역을 포함해서 지하철을 기피하는 사람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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