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12 이별 여행에서 맛본 벤틀리 호라이즌 위스키

오토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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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27 오후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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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12 이별 여행에서 맛본 벤틀리 호라이즌 위스키


맥켈란이 만든 새로운 유형의 ‘벤틀리’ 한 병 값은 6900만 원에 달한다

“자,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녀의 최신작에 대해 몇 가지 물어보려고 새로운 벤틀리의 제작자인 크리스틴 캠벨(Kirsteen Campbell)에게 다가가자 그녀가 내게 먼저 질문을 던졌다. 대체 어떤 장면인지 헷갈릴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벤틀리’는 유서 깊은 크루(Crewe) 공장에서 만들어져 이제 은퇴를 목전에 두고 있는, 그리고 내가 이곳까지 하루 종일 몰고 온 W12 엔진을 탑재한 벤틀리를 가리키는 게 아니다. 최근에 등장한 벤틀리를 ‘한 모금’ 맛보고 난 직후에 받은 질문이다.

그렇다, 이건 우리가 아는 그 벤틀리가 아니라 위스키이다. 그리고 캠벨은 평범한 벤틀리 엔지니어가 아니라 위스키 제조의 달인이다. 걱정할 건 없다. 여러분은 분명히 <오토카>를 읽고 있으며, 잠시 후 내가 어떻게 이곳까지 왔는지 자세히 설명할 테니 말이다. 새로운 벤틀리에 대한 얘기를 주고받은 곳은 ‘크루’가 아니라 스코틀랜드 북동부 ‘스페이’(Spey) 강둑에 있는 맥켈란(Macallan) 증류소였다. 이들은 우리가 잘 아는 럭셔리카 제조사와 협력해 지난 4년에 걸쳐 ‘벤틀리와 같은 맛을 내야 하는’ 위스키를 빚어냈다.

호라이즌(Horizon)이라고 불리는 이 위스키는 지금까지 나온 맥켈란 위스키 가운데 가장 긴 개발 기간을 거쳤으며, 럭셔리카 시장에서 벤틀리의 위치에 견줄 만한 가격표를 달고 있다. 무려 4만 파운드(약 6900만 원)다. 호라이즌은 벤틀리의 전설이 작별을 고하려 하는 바로 그 순간에 도착했다. 20년이 조금 넘는 세월에 걸쳐 숙성해온 W12 엔진은 사실 이제 막 전성기를 맞이해야 하지만, 배기가스 규제와 전동화의 맹공격으로 인해 그 자리를 내어주어야 한다. 이제 벤틀리 공장에서는 마지막 단계에 접어들고 있지만, 굳이 필요하다면 재고물량 중에서 찾아내어야 한다.

생산 종료 날짜는 아직 정해지진 않았지만, 몇 달이 아니라 몇 주의 문제다. 과거 세기의 전환기에 폭스바겐 그룹 산하로 들어가면서 선보였던 W12는 오늘날 벤틀리 성공을 일궈낸 기반이기도 하다. 출력보다도 강력한 토크가 훨씬 더 많은 것을 의미하는 매우 다른 종류의 고성능 엔진이었고, 그 사이즈는 최고 수준의 정교함으로 최소한의 스트레스를 보장해주었다. 이 엔진의 구성은 패키지에도 영향을 미쳤다. 덕분에 W12는 동급 V12 엔진보다 약 4분의 1가량 짧다.

우리가 ‘매우 다른 유형의 최신 벤틀리’를 만나러 가는 길은 약 643km의 거리였다. 이는 마지막 W12의 강력한 토크와 정교한 성능을 경험하고 경탄하며 작별인사를 보낼 수 있는 마지막 여정이기도 했다. 플라잉 스퍼 스피드 에디션(Flying Spur Speed Edition) 12는 120대의 기념 제작 세단 중 하나다. 몇몇 특별한 디자인 요소를 지니고 있으며, 구매자에게는 626마력의 최고출력과 91.8kg·m의 최대토크를 내는 W12 엔진 축소 모형을 함께 선물하는데 이는 호라이즌 위스키와 함께 선반에 보관해두기에 아주 그만이다.

이 패키지는 벤테이가 SUV나 컨티넨탈 쿠페, 콘티넨탈 카브리올레에도 제공된다. 대개 장거리 운전을 시작할 때는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입력하고 하루 동안 얼마나 먼 거리를 주행해야 할지 바라보며 호흡을 가다듬곤 하는데, 이 특별한 날에는 그렇지 않았다. 대신, W12 엔진을 올린 벤틀리가 곧게 뻗은 아스팔트 도로를 마치 활강하듯 힘들이지 않고 달리는 ‘여행’이 되리라는 느낌이 들었다. 달리는 차 안에서 진정한 휴식과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그런 여행 말이다.

도로 주행 자체는 사실 별로 주목할 만 한건 아니었고, 특별한 이슈보다는 그 거리가 눈길을 끌 만했다. 실제로 첫 610km 정도는 고속도로, 혹은 과속 단속 카메라로 가득한 자동차 전용도로였다. 코너 조차 거의 보이지 않았다. 낸트위치(Nantwich)를 출발한 우리는 체셔(Cheshire) 카운티의 출근길 정체를 뚫고 맨체스터(Manchester) 남부로 향하는 M6 고속도로에 올라탔다. 얼마 뒤 M6 고속도로는 A74 고속도로로 바뀌었고, 영국을 출발한 우리는 스코틀랜드로 접어들었다. 어딘가를 향해 장거리 운전을 앞두고 일찍 일어나는 즐거움 중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오전 10시가 되기도 전에 나는 이미 W12에 편안히 앉아 240km 지점을 지나고 있었다. 엔진은 전혀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고, 나 또한 그랬다. 에딘버러(Edinburgh) 북쪽에서 나는 스코틀랜드의 ‘몰트 위스키 도로’로 이름난 A95 대신 A9 도로를 선택했다. 이 곳은 굽이진 코너를 돌아가며 찬란한 늦은 오후 햇살 속에서 스코틀랜드의 전통적인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멋진 도로였다. 이 구간을 지날 때 나는 동승석에 타고 있었다. 직접 운전하지 않을 때는 늘 멀미를 하는 편이어서 으레 긴장하곤 하는데, 플라잉 스퍼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운전하지 않고 있을 때도 동승석에 앉아 W12 엔진의 실린더 배치 순서를 떠올리려 했던 걸 또렷이 기억할 수 있을 정도로 편안했다. W12는 운전자에게 스트레스나 위압감을 전혀 주지 않으면서 가능한 한 짧은 시간에 최대한 긴 거리를 달리는 그런 종류의 엔진이다. 영광스러울 정도로 과하게 만들어졌고, 무거운 스로틀 부하에도 불구하고 소음을 거의 들을 수 없는 매우 특별한 유형의 고성능 엔진이다. 엄청난 성능에도 불구하고 유난스럽게 굴지 않는다는 점에서 실로 주목할 만하다. 90리터 용량의 연료탱크는 플라잉 스퍼에 643km 이상의 주행거리를 선사한다. 우리가 스코틀랜드 외곽의 굽이진 고속도로에서 W12의 매끈한 속도를 즐기며 애버루르(Aberlour) 마을을 지나 맥캘란 사유지에 도착했을 때 트립 컴퓨터에는 8.8km/L 이상의 연비가 표시되어 있었다.

기어 변속은 곧 맛볼 ‘또 다른 유형의 벤틀리’만큼이나 매끄러웠으며, 5.3m가 넘는 차체 길이와 2.5톤 이상의 무게에도 불구하고 플라잉 스퍼는 다른 어떤 차보다 역동적인 운전감을 안겨줬다. 기나긴 운전을 마치고 나서, 캠벨의 첫 질문에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정말 좋아요”라는 말뿐이었다. 그리고 플라잉 스퍼에서 보낸 시간을 설명하기 위해서도 동원할 수 있는 단어 몇 개를 더 추가하면서 다시 한 번 대답할 수 있었다. 아주 아주 좋았다. 그래서 정말로 벤틀리 맛이 났냐고? 벤틀리와 마찬가지로 나무와 가죽을 사용한 건 분명하지만,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하겠다. 그 맛에 취해 잘난 체했다간 위스키 매거진 필자들을 곤란하게 만들지도 모르니 말이다.

위스키 업계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사람으로서 6900만 원이라는 가격을 받아들이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그 위스키에 담긴 스토리와 ‘호라이즌’의 가치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더욱이 맥켈란 증류소는 벤틀리를 절로 떠올리게 한다. 그들은 완벽한 전문가들이고 기술에 대해 전적으로 헌신적이며 놀라울 정도로 진지하지만, 동시에 정말 친절하고 따뜻하기도 한 사람들이다. 호라이즌이 지닌 가치의 상당 부분은 희귀성에서 비롯된다. 단 700병만 만들 예정이고 이는 맥켈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자우메 페라(Jaume Ferrà)가 말했듯 소량의 럭셔리카를 수제작으로 만들어내는 것과 같다. 무엇이든 5000개 이하라면 소위 ‘리미티드 버전’으로 간주할 수 있다.

모든 호라이즌 위스키 병과 거치대는 벤틀리와 마찬가지로 나무와 가죽, 금속과 유리를 손으로 일일이 다듬어 만들어내며 그 병에 담긴 소중한 액체는 단 여섯 개의 셰리 오크통으로만 빚어낸다. 벤틀리를 운전할 때면 이 차의 가격을 알고 있으니 그에 취향과 예산을 맞추게 되는데, 위스키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호라이즌 700병은 이미 예약이 완료됐고 그들은 맥켈란 증류소 정문을 통과하자마자 중고시장에서 훨씬 더 높은 가치를 갖게 될 것이다. 이는 시장이 생각하는 그 가치를 알려주는 단서이기도 하다.

호라이즌을 맛본 건 정말 기쁘지만, 다시는 이 위스키를 맛볼 수 없더라도 슬프진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벤틀리 W12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 지난 20년 넘도록 성능을 높이고 효율성을 개선하는 동시에 배기가스를 줄이기 위해 얼마나 많은 개발을 이뤄왔는지 생각하면, 이처럼 위대한 성과의 소멸은 전혀 ‘진보’로 여겨지지 않는다. 위스키와 정반대로, 세월은 좀 더 많은 이들이 W12 엔진을 올린 차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언젠가 이 기사를 다시 한 번 들춰보게 될 것이다. 

THE WORLD OF WHISKY

‘맥캘란’은 위스키 제조업계의 ‘벤틀리’라고 한다. 그들이 내게 그렇게 말했고, 내가 직접 본 증거들을 토대로 나 또한 기꺼이 그 말을 믿기로 했다. 이곳은 올해로 200년이 되었다. 지난 2018년에는 약 185만 ㎡의 광대한 부지에 새로운 증류소를 열었고, 1년 뒤에 ‘007 영화’ 악당의 소굴과 ‘윌리 웡카’ 공장 사이 어딘가에 있는 듯한 방문객 센터가 문을 열었다. 이 증류소에는 연간 1200만 리터의 증류주를 생산하는 서른여섯 개의 스틸이 보관되어 있다.

맥캘란에서 근무하는 270명 중 단지 12명만이 위스키 맛의 20%를 제공하는 63.5%의 방수 스피릿(오크통에 3년 이상 보관해야만 스카치 위스키가 될 수 있다) 제조 책임을 갖고 있으며, 나머지는 셰리 향이 나는 통에서 나온다. 어느 때나 45만 개가 넘는 통이 맥켈란 사유지에 놓여 있는데, 그 가운데 일부는 무려 81년이나 되었다. 고급 위스키의 세계는 최고급 자동차의 세계와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위조 방지와 보안을 위해 병에 쓰는 마개와 봉인을 끊임없이 개발해야 하는 문제도 있고, 희귀한 한정판 위스키를 구입한 뒤 이를 되팔려는 투기꾼들도 신경 써야 한다.

호라이즌은 맥켈란이 만든 위스키 중 가장 비싸겠지만, 그 이름으로 팔린 위스키 중 가장 비싼 건 아니다. 발레리오 아다미가 디자인한 희귀한 라벨이 붙은 1926년산 빈티지 중 하나가 지난해 경매에서 220만 파운드(약 38억 원)에 팔렸다. 1987년 그 위스키가 처음 출시됐을 때는 5000파운드였다.

글·마크 티쇼(Mark Tissha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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