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개인정보와 ‘반공유재의 비극’

아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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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24 오전 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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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기고] 개인정보와 ‘반공유재의 비극’

사진아주경제DB
김동영 KDI 전문연구원·중앙대학교 겸임교수.

아무리 생각해도, 디지털 경제시대에는 개인정보의 보호와 활용 모두 너무나 중요하다. 하지만 현실에서 개인정보는 보호를 넘어 아예 활용되지 않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개인정보 남용 방지를 위한 제도는 아예 활용하지 않는 미활용의 인센티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보호’의 목적이 남용의 방지라면, 효과적인 보호는 적절한 활용으로 이어질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결과는 완전한 미활용이다. 특히 개인정보 사전동의(opt-in) 방식을 취하는 국가에서 이러한 모습이 두드러진다.

일부에서는 ‘반공유재의 비극’이라는 개념으로 이를 설명한다. 소유권이 도가 지나치면 자원을 이용할 수도, 협력할 수도 없어 자원이 활용되지 못하는 비효율이 발생한다는 의미다. 흔히 ‘공유재’란 누구나 이용할 수 있지만, 누군가의 이용으로 다른 사람의 사용 가능성은 줄어드는 재화로 정의된다. 결과는 자원의 남용이다. 생태학자 개릿 하딧은 이를 ‘공유재의 비극’으로 표현했다. 공동으로 어획 가능한 호수에서는 최대한의 사익을 추구하는 이기적 개인에 의해 필연적으로 과다한 어획이 이뤄져 물고기가 모두 멸종한다는 것이다. 해결책은 호수를 구역으로 나눠 각자에게 소유권을 부여하면 개인이 강력한 보존의 동기를 갖게 된다는 점을 간파한 경제학자들의 몫이었다. 고기를 너무 많이 잡으면 내일 굶어야 하기 때문이다.

소유권 기반의 해결책은 진리처럼 보였다. 하지만 법학자인 마이클 헬러의 생각은 달랐다. 지나친 소유권은 서로를 방해하는 환경을 만들어 자원의 활용 자체가 불가능해진다는 점을 발견했다. 초창기 항공 서비스업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원래 영토는 육지뿐 아니라 공중에도 적용된다. 땅을 소유하는 자가 땅속과 하늘도 소유한다는 개념이다. 보이지 않지만 육지에서 솟아오른 공기 기둥이 하늘의 소유권을 규정한다. 문제는 비행기가 등장하면서 불거졌다. 토지 소유자들이 자신의 토지 위 하늘을 날아가는 비행기에 대가를 요구한 것이다. ‘공중의 요금소’가 존재하는 셈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항공산업에서 기대할 수 있는 이익으로는 토지 소유자들에게 지불하는 비용을 감당할 수 없었다. 비행기가 발명됐음에도 항공 산업이 태동되기 어려웠던 이유다. 마이클 헬러는 이처럼 소유권이 존재함에도 활용되지 못해 공유재처럼 비효율이 발생하는 재화를 ‘반공유재(anti-common)’라고 표현했다.
 
개인정보도 반공유재의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다. 보호를 위해 수많은 개인에게 정보의 소유권을 부여하고, 활용 동의를 받도록 제도가 설계됐다. 사안별로 모든 동의를 받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든다. 결국 개인정보 동의와 관리의 비용이 기대이익을 넘어 이를 활용할 수 있는 주체는 아주 소수에 지나지 않게 된다. 사실상 미활용의 상태에 놓인다. 그렇다고 보호를 게을리할 수도 없다. 그 어느 때보다 남용의 가능성이 높아진 환경 탓이다. 네트워크 효과로 무장한 디지털 플랫폼이 등장한 오늘날 개인정보는 순식간에 수집되고, 공간적 제약 없이 목적 외로 얼마든지 활용될 수 있다.

해결책은 과거 사례에서 엿볼 수 있다. 정부는 1926년 항공통상법을 제정해 공중에 대한 소유권을 제한했다. 야간에는 1000피트, 주간에는 500피트까지만 소유권을 인정했다. 이는 비행기의 순항고도보다 한참 아래다. 공중에 대한 소유권을 일정 범위로 제한하자 비로소 비행기가 다닐 수 있는 하늘길이 생겨났다. 소유권이 일부 제한되지만 그 결과로 사회 전체가 얻는 이득이 더 크다고 해석한 결과다.
 
개인정보의 보호와 활용도 활용의 이익과 침해의 피해가 유연하고 균형 있게 다뤄질 때 디지털 시대 생산요소로서 역할을 할 수 있다. 미활용으로 인해 자원이 낭비되는 반공유재의 비극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의미다. 이익형량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원칙 중심의 법제도 설계가 전제되어야 한다. 원칙들을 수립하고 그 원칙의 부합 여부가 보호·활용의 판단 기준이어야 한다. 그래야 모든 개인정보가 천편일률적으로 판단되지 않고, 동일한 정보라도 상황과 맥락에 따라 때로는 보호가, 때로는 활용이 우선될 수 있다. 개인정보의 처리를 세세하고 경직적으로 규정하는 현 방식으로는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하는 디지털 경제의 다양한 측면을 조금도 담아낼 수 없다. 개인정보도 본질은 데이터다. 데이터는 아무리 재활용되더라도 닳지 않고, 쓰일수록 그 가치가 더욱 커지는 특성이 핵심이다. 데이터가 모이면 정보가 되고 정보가 모이면 지식이, 인사이트가 된다.

한편 프라이버시와 개인정보는 다르다. 얼굴은 날 때부터 오롯이 나의 것이지만, 휴대폰 번호·이메일 등 개인정보는 사회구성원으로서 나를 구분하기 위한 정보다. 공익을 위한 성격이 담겨 있다는 의미다. 데이터는 쓰이고 모일 때 공익을 위한 본연의 목적을 제대로 달성할 수 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임은 예나 오늘날이나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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