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년 된 상처, 왜 또 헤집나”…제주4·3 유족은 오늘도 울었다

뉴스1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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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03 오전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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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년 된 상처, 왜 또 헤집나”…제주4·3 유족은 오늘도 울었다

3일 제75주년 제주4·3 추념식 봉행에 앞서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 행방불명인 묘역에서 유족들이 희생자의 넋을 기리고 있다.2023.4.3 [제주도사진기자회] © News1 강승남 기자

제주4·3 희생자 추념일인 3일 오전 제주4·3평화공원 행방불명인 고(故) 강대운씨 표석 앞.

소주 한 병과 쌀밥 한 공기, 하얀 국화꽃 세 송이를 머리 맡에 두고 딸과 함께 두 번 절을 올린 강순자씨(75·여)는 고개를 들자 마자 순간 터져나오는 울음을 와락 쏟아냈다.

아버지를 잃은 지 올해로 꼭 75년.

어머니 뱃속에서 아버지의 마지막 순간을 맞아 아버지 얼굴도 모른 채 어머니와 단둘이 75년 세월을 버텨 왔다는 강씨는 “언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아직도 모르는 게 평생 한(恨)”이라고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아버지가 어머니와 함께 있다가 갑자기 군경에 끌려갔다는 이야기만 들었다”면서 “어머니도 올해 95세로 연로하셔서 더 이상 물어볼 데도 없고…”라고 말을 잇지 못했다.

강씨는 “제주4·3 희생자 추념일이 돌아올 때마다 이 곳에서 아버지의 넋을 기리고 있는데 하늘에서는 편안하시길 바랄 뿐”이라며 눈물 젖은 손수건으로 연신 표석을 어루만졌다.

아내, 아들과 함께 이 곳을 찾은 강모씨(89)는 제주4·3 광풍에 휩쓸려 목포형수모 수감 중 행방불명된 두 형님의 표석 앞에서 긴 묵념을 했다.

제를 마친 강씨는 “형님들의 마지막 흔적은 아직 못 찾았지만 이렇게 매년 4월3일 표석 앞에 인사를 드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참 고마운 일이라고 여기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최근 제주4·3을 왜곡·폄훼하는 세력에 대해 쓴소리도 했다.

‘제주4·3은 김일성의 지시에 의해 촉발됐다’는 망언을 한 태영호 국회의원(서울 강남구 갑·국민의힘), 제주 전역에 ‘제주4‧3은 김일성이 일으킨 공산폭동’이라는 현수막을 내건 우리공화당·자유당·자유민주당·자유통일당, 이날 오전 추념식장 앞에서 같은 취지로 집회까지 하고 있는 서북청년단 구국결사대를 향한 것이다.

3일 제75주년 4·3 추념식 봉행에 앞서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 행방불명인 묘역에서 유족들이 희생자의 넋을 기리고 있다.2023.4.3 [제주도사진기자회] © News1 강승남 기자

강씨는 “무고하게 돌아가신 분들이 얼마나 많은데 왜 이렇게 쓸데 없는 이야기들을 하는지 모르겠다”며 “정말 제주도민 입장에서는 가슴이 미어지는 일”이라고 했다.

아내와 함께 아버지 표석 앞에서 제례를 마치고 나오던 이봉례씨(71)도 같은 마음이었다.

이씨는 “코로나19 때문에 3년 만에 아버지를 찾아 뵀는데 거동이 불편해 절도 못하고 서서 묵념만 하고 나왔다”며 “안 그래도 마음이 좋지 않은데 추념식장 앞에 우익단체들이 모여 집회까지 하고 있는 모습까지 보여 피가 마르고 살이 떨린다”고도 했다.

행정안전부가 주최하고 제주특별자치도가 주관하는 제75주년 제주4·3 희생자 추념식은 이날 오전 10시 제주4·3평화공원에서 열린다.

한편 제주4·3은 1947년 3월1일을 기점으로 1948년 4월3일 발생한 소요사태를 거쳐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된 1954년 9월 21일에 이르기까지 무려 7년 7개월 간 무력충돌과 그 진압과정에서 최대 3만명(정부 잠정 추산)이 희생당한 사건이다.

1947년 3월1일 제28주년 3.1절 기념식 직후 벌어진 가두시위에서 군정경찰의 발포로 주민 6명이 희생당한 사건이 도화선이 됐고, 이어진 민관 총파업과 서북청년단 등을 동원한 군정경찰의 검거공세가 제주4·3으로 이어졌다.

정부가 2003년 발간한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는 제주4·3에 대해 “제주도의 특수한 여건과 3·1절 발포사건 이후 비롯된 경찰·서북청년단과 제주도민 간의 갈등, 그로 인해 빚어진 긴장 상황을 남로당 제주도당이 5·10 단독선거 반대 투쟁과 접목해 일으킨 사건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기술했다.

mro1225@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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