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지노’에 베팅한 윤일상의 음악 세계

머니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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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27 오후 0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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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지노’에 베팅한 윤일상의 음악 세계

윤일상, 사진출처=스타뉴스DB
윤일상, 사진출처=스타뉴스DB

스트리밍 서비스 디즈니 플러스의 오리지널 시리즈 ‘카지노'(감독 강윤성)를 보며 ‘최민식판 수리남’ 같다는 생각을 했다. 성공을 향한 캐릭터의 비뚤어진 집념, 그 집념을 연장시켜주는 타고난 수완이 일단 닮았고 당대를 대표하는 두 베테랑 배우의 물오른 연기를 볼 수 있다는 점, 해외 로케이션, 결국 감옥행이라는 인물들의 운명까지 두 작품은 착실하게 공유한다. 과거로 갔다 오는 플래시백 진행만 다를까, 질감과 정서에서 두 작품은 이처럼 지근거리에 있다. 하물며 조용필의 ‘꿈’을 좋아하는 전요환(황정민)과 학창 시절 빌리 조엘의 ‘Piano Man’을 즐겨 부른 차무식(최민식)의 음악 취향까지 ‘팝’이라는 같은 카테고리에 있으니, 두 드라마는 2022년을 대표할 한국형 OTT 누아르 액션물이란 점 외에도 확실히 비교할 게 많다.

지난 22일, 그 ‘카지노’의 사운드트랙이 정식 발매됐다. 신해철의 저음과 밀젠코 마티예비치(스틸하트)의 고음을 수월하게 넘나드는 보컬리스트 하현우가 부른 차무식의 테마 곡 ‘Show Down’이 가사 버전과 연주 버전으로 두 트랙을 차지했고 나머지 90 트랙은 드라마 여기저기를 떠돌며 이야기의 피와 살이 되는 소품형 곡들로 채워졌다. 이 모든 작업을 감독한 이는 윤일상. 맞다. 지금 당신이 떠올린 그 사람. 쿨의 운명을 ‘운명’이란 곡으로 바꾼 이. 그 외 이은미와 김범수, 이승철과 김연자, 구피와 터보, DJ DOC와 영턱스클럽, 브라운 아이드 걸스와 이윤정에게 두루 곡을 준 작곡가 겸 프로듀서인 그는 데뷔 30주년을 넘긴 현재까지 도합 900곡에 가까운 커리어를 기록하고 있다. 이 커리어는 크리스 크로스의 ‘Jump’로 명성을 얻은 저메인 듀프리를 라이벌로 설정한 19살 때 프로가 돼 박준희 2집에 ‘Oh! Boy (너의 아침에)’와 ‘쿡쿡(Kuk Kuk)’을 제공한 이후 지금까지 한 순간도 쉬지 않고 달려온 음악가로서 그의 흔적이다.

윤일상은 클래식을 좋아한 모친의 영향으로 5살 때부터 피아노를 쳤다. 작곡은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 했는데 동생이 태어난 기쁨에 만든 그 노래의 제목은 ‘귀염둥이 내 동생’이었다. 모친이 음악을 좋아한 만큼 외삼촌은 아예 음악을 업으로 삼던 사람이었는데 다름 아닌 드라마 음악감독 최경식이다. ‘여명의 눈동자’, ‘모래시계’, ‘질투’ 같은 전설적인 드라마 목록에서 우린 그의 이름을 볼 수 있다. 최경식이 중요한 건 윤일상이 외삼촌 회사였던 뮤직라인에서 6개월간 잔심부름을 하며 지낸 시기에 그가 음악 장비(미디, 시퀀서), 녹음 진행 방식, 음반 업계의 생리, 인맥적 기반을 닦았기 때문이다. 이후 미스터투의 ‘하얀 겨울’을 만든 오동석의 소개로 당시 개국한 지 얼마 안 된 SBS 어린이 방송음악을 맡은 윤일상은 해당 작업으로 작곡가로서 첫 수입을 올렸다.

'카지노', 사진제공=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카지노’, 사진제공=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문득 그런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인기 가요를 만들어오던 사람이 무슨 드라마 음악감독을 맡을 수 있겠냐고. 둘은 다른 분야 아니냐고. 편견이다. 윤일상이 ‘정'(영턱스클럽)이나 ‘보고 싶다'(김범수) 같은 노래를 만들었다 해서 그가 영향받고 앞으로 하려는 음악까지 다 그러리란 법은 없다. 당장 돌이켜봐도 윤일상이 작곡가로서 처음 자극을 받은 대상은 초등학교 5학년 때 부친이 선물한, 자신이 팝에 눈 뜨게 해준 비틀스 베스트 앨범이었다. 그는 록 음악도 즐겨 들었는데 특히 레드 제플린과 딥 퍼플을 애청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카지노’의 사운드트랙에서 ‘Youth Cha Moo-Sik’이란 트랙에서 레드 제플린의 ‘Kashmir’의 냄새가 나는 건 그래서 우연이 아니다. 물론 그는 클래식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쇼팽과 모차르트, 리스트와 베토벤, 바흐는 지금도 그에겐 뿌리 같은 이름들이다. 이 모든 리스너로서 성향이 ‘카지노’의 트랙 마디마디에 스며있다.

무엇보다 윤일상에게 무대나 영상과 결부된 음악감독 일이 처음이 아니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는 이미 영화 ‘안시성’에서 거대한 화성의 몸부림을 들려준 바 있고, 뮤지컬 ‘서편제’의 음악을 맡아 국악 세계도 탐닉한 경험이 있다. 작가 출신 감독 천명관이 연출한 ‘뜨거운 피’에 흐르던 음악도 윤일상의 손을 거쳤다. 언젠가 그는 ‘서편제’ 음악을 세상에 뮤지컬이라는 장르가 아예 없다 생각하며 만들었다고 했다. 뮤지컬 음악이라는 것 자체를 자신이 처음 만든다고 가정한 것이다. 이는 늘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음악’을 만들고 싶어한 그의 창작론과 일치하는 지점으로, 윤일상이 “자기 모방은 자기 고갈의 결과를 낳는다”는 피카소의 말을 왜 좋아하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런 윤일상이 영상(영화, 드라마) 음악감독으로서 염두에 두는 건 “특정 장면을 부각해주는 음악”이다. 그는 그것이 좋은, 바람직한 영상음악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그의 롤모델이 한스 짐머인 이유다. ‘카지노’를 듣고 있으면 실제 윤일상이 그간 품어온 ‘한스 짐머적’ 비전이 일거에 풀어헤쳐지는 느낌을 받게 된다. 가령 록, 레게, 펑크(Funk), 라틴, 블루스, 클래식, 트로트 고고 등 장르에 얽매이지 않고 드라마의 “특정 장면”에 어울리도록 과유불급의 화성 스케치를 그는 해나가는 것이다. 트렌드를 잡고 싶으면 일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늘 세상과 결부시키라고 말하는 윤일상은 향후 “음악이라는 언어로 이뤄지는 모든 예술 행위를 다 해보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그리고 대중을 의식하지 않는 대중적인 음악, 본인이 가장 잘할 수 있고 본인만이 할 수 있는 음악을 해나가리라는 그의 꿈은 “전 세대를 어우르는 설득력 있는 음악”을 만드는 일이다. ‘카지노’ 사운드트랙에서 그는 그 꿈을 절반은 이룬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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