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폭염 살인

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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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1 오후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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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폭염 살인

폭염 살인./웅진지식하우스
폭염 살인./웅진지식하우스

지난 5월 멕시코 남부 연안에서 유카탄검은짖는원숭이 83마리가 높은 나무에서 사과처럼 우수수 떨어져 죽은 채로 발견됐다. 사인은 심각한 탈수와 고열 증세였다. 2021년 미국 태평양 북서부 연안에서는 아직 날 줄도 모르는 새끼 독수리 수십 마리가 불구덩이처럼 달궈진 둥지 위에서 투신했다.

지구 북반구를 휩쓸고 있는 무더위는 자연에 서식하는 동물 뿐 아니라 인명 피해를 야기한다. 섭씨 50도까지 올라간 인도에서는 100명 이상이 열사병으로 숨졌고 사우디 성지순례 사망자도 1000명을 넘어섰다. 한국 역시도 예외가 아니다. 물가 폭등, 슈퍼 산불과 전염병에 이르기까지, 폭염은 우리 삶을 전방위로 압박할 것이다.

신간 ‘폭염 살인’은 전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기후 문제를 취재한 기자 제프 구델이 폭염에 시달리는 지구촌의 모습을 전한다.

극한 더위를 가리키는 폭염은 차가운 공기를 순환시키는 제트기류의 흐름이 지구온난화로 예측 불가하게 꼬이면서 기온이 상승하는 기후 재앙이다. 지구온난화가 가속될수록 폭염의 기습은 더 예측하기 어려워진다. 최근 한 연구에 따르면 오늘날 폭염이 일어날 확률은 산업화 시대 초기에 비해 150배나 높아졌고, 산불이 난 듯 치솟은 바다 온도는 해마다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책에 따르면 2019년 기준 48만9000명에 달하는 세계 폭염 사망자는 허리케인과 태풍, 수해 등 자연재해로 인한 사망자의 합계를 훨씬 웃돈다.

저자는 평균기온 45도를 웃도는 생존 위협을 겪는 파키스탄부터 시카고, 사라져가는 남극에서 파리까지 가로지르며, 우리 일상과 신체, 사회 시스템을 극한으로 몰아붙이는 폭염의 참상을 낱낱이 기록한다. 또 한때 풍요의 땅이었으나 이제는 죽음의 땅으로 변모한 ‘매직 밸리’, 리오그란데 계곡과 수확량이 절반으로 줄어버린 텍사스 옥수수 경작지를 찾아가 절망하는 농부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전한다.

지구 곳곳에서 폭염으로 인해 야생 동물과 인간의 거주지 이동이 불가피하게 이뤄지고 있다. 육상 동물들은 현재 10년마다 약 20km씩 북상하고 있으며, 대서양의 경우 같은 기간 동안 160km, 산호마저도 매년 약 32km씩 북쪽으로 이동한다. 따뜻해진 해류로 해수면이 상승하며 해안 도시의 주민들도 집을 버리고 이주를 택한다. 남극의 붕괴를 처음 포착한 기후학자 존 머서는 서남극의 빙상이 녹아 해수면이 5m 상승하면 플로리다와 네덜란드는 지도에서 사라질 것이라 이미 경고했다. 인천, 부산 등 한국의 해안 도시들도 전 지구적 기후 이주 대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또 폭염은 노동 생산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 책에 따르면 평균기온 1도씩 상승할 때마다 미국의 국내총생산(GDP)의 약 1%인 3000억달러(약 4조원)가 증발한다. 폭염 아래 야외 노동은 불가능하고, 설비의 고장 역시 늘어나기 때문이다. 2020년 미국에서 극단적 더위로 인한 노동자의 생산성 저하는 1000억달러의 손실을 불러왔고 이 손실액은 2050년 5000억달러까지 증가할 것으로 추산된다. 이 같은 생산 시설과 노동 생산성의 감소 끝에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것은 생존마저 위협하는 마트의 ‘가격표’다.

열은 우리의 사회 시스템마저 붕괴시킨다. 통계에 따르면 지구 기온이 1도 올라갈 때마다 자살과 유산이 늘어난다. 혐오발언과 강간 사건을 비롯한 각종 강력범죄 빈도가 높아진다. 저자는 “지구상 모든 존재의 생존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정치·경제적 문제가 골딜록스 존(Goldilocks zone), 즉 생존 가능 영역 밖으로 한 발짝 내딛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산업구조, 질병 알고리즘, 기후과학을 망라하며 살인 폭염에 대처하기 위한 과학적 근거와 해결 방안을 고민한다. 세계 국가들이 폭염에 대비해 도시의 얼굴을 바꾸는 이때, 우리는 어떻게 대안을 마련하고 있을까. 저자는 “폭염 살인을 잘 대비하고 있는지 물어야 할 때”라고 경고한다.

제프 구델 지음 | 왕수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508쪽 | 2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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