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돌아보기] 저출생 해소, 아빠에게 거는 기대

데일리임팩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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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0 오전 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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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돌아보기] 저출생 해소, 아빠에게 거는 기대

함인희 논설위원
함인희 논설위원

“역사상 아버지가 부재했던 적은 없으나, 정작 아버지 연구자가 부재한다는 사실은 진정 아이러니다.” 자타 공인 부성 연구의 선구자인 미국 가족사회학자 랄프 라로사(Ralph Larosa, 1946~)의 주장이다. 부성 역시 모성과 마찬가지로 역사의 흐름을 따라 다채로운 변화를 경험해왔음이 틀림없다. 저출생이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상황에서 아빠를 향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저조함은 아쉽기만 하다.

한때 “자녀가 성공하려면 엄마의 정보력, 조부모의 경제력, 그리고 아빠의 무관심이 필수”라는 유머가 유행했는데, 요즘은 쑥 들어간 듯하다. 신뢰할 만한 통계 어디에도 아빠의 무관심이 자녀의 성취 및 성공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결과는 없을 것이다. 아빠의 무관심을 외친 건 엄마의 음모(?) 아니었을까?

저출생 해법을 찾는데 새삼 아빠에게 관심이 간 이유는 대학원생 제자의 석사학위 논문 덕분이다. 제자는 이미 한 자녀를 둔 부부를 대상으로 둘째 자녀 출생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무엇일까를 연구 주제로 삼고, 심층인터뷰를 진행했다. 연구자의 마음속엔 아이를 맡아 키워줄 친정 혹은 시어머니가 계시는지 여부가 중요하리라 예상했고, 정부의 워라밸 정책도 둘째 자녀 출산에 우호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추론했다.

하지만 다양한 배경의 부부를 만나 인터뷰한 결과, 둘째 자녀를 가질 것인지를 결정하는 데 공통적으로 영향을 미친 건 결혼 당시 남편의 생각으로 밝혀졌다. 남편의 이상적 자녀수가 ‘그래도 둘은 있어야지’인 경우 예외 없이 둘째를 고민했던 것이다. “둘째 낳으면 키워주겠다”는 친정 혹은 시어머니가 계신다 해도 부부들은 별로 호응하지 않았고, 정부의 워라밸 정책은 거의 고려 대상조차 되지 않았음은 신선한 발견이었다. 물론 대다수 부부는 첫째를 낳은 이후 양육 상황이 녹록지 않아 둘째를 포기하는 경우가 다반사이긴 했지만 말이다.

그래도 아빠를 향한 희망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오래전 KT의 초청을 받아 육아 휴직 후 복귀자 대상 교육에 참여한 적이 있다. 교육 대상자 15명 중 3분의 1이 아빠라는 사실에 내심 놀랐던 기억이 생생하다(아마도 고용 안정성이 높은 KT였기에 가능했을 것 같다). 육아 휴직 후 복귀자가 느끼는 가장 큰 고충을 물으니, 업무 배치라는 답이 돌아왔다. 자신이 자리를 비운 사이 누군가가 자신의 업무를 대신했으리라는 건 이해하는데, 복귀 첫날 자신의 경력이나 경험과 전혀 무관한 자리에 배정받고 보니, 솔직히 나가라는 신호인지 의구심마저 드는 상황이라 했다. 그 자리에 있던 인사 담당자가 다음 인사 시즌에 고충을 반영하겠노라 약속하면서 상황이 수습되었다.

한데 나를 놀라게 했던 건, 아빠들이 육아휴직을 한 이후에야 복귀자의 적응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도 만들어지고, 업무 배치 문제가 이슈로 부상하는 현실이었다. 그동안 엄마들은 육아휴직 후 복귀하면서 자신을 받아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한 나머지, 아무런 문제 제기도 못한 채 벙어리 냉가슴만 앓았던 게다. 현실이 이러하니, 아빠의 육아휴직이 주류가 되는 상황이 온다면 여성의 경력단절 공포 또한 완화될 것이 분명하다.

6월 둘째 주 목요일 KBS <다큐인사이트>에서는 ‘초저출산 시대, 아이 낳는 사람들’을 주제로 부부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중 한 아빠의 스토리가 관심을 끌었다. 그는 부부가 공동으로 참여하고 함께 책임지는 육아를 위해, 보수가 높은 대신 장시간 근무를 요구하는 직장을 떠나 탄력 근무제를 실시하는 곳으로 이직했다. 초보 아빠를 지나 프로페셔널 아빠가 된 지금, 그는 설령 보수가 더 많더라도 근무시간이 긴 예전 직장으론 복귀할 생각도 없거니와 그러고 싶지 않다고 단호히 말했다. 아빠라는 경험의 가치와 의미는 세상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것임을 체득한 그의 표정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예전 대표적인 가족친화기업으로 유명한 모 대기업에서 월 1회 가정의 날을 정하고, 오전 근무가 끝나면 곧장 퇴근하도록 사무실 전기를 차단하는 조치를 취했다고 한다. 일단 사무실을 빠져나간 직원들 다수는 회사 근처 PC방에서 게임을 하거나, 삼삼오오 짝지어 낚시 사이클 등의 취미활동을 했다고 들었다. 이제 세월이 흘러 우리도 ‘저녁이 있는 삶’을 향해 가고 있는 듯하다. 아빠의 저녁이 자녀와 함께하는 시간으로 채워지는 가족 풍경은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그래도 아이는 둘은 있어야지’, 아빠들의 소박한 꿈이 이루어지길 응원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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