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택시 2대로 시작한 정도경영… 박인천 금호그룹 창업회장 40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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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16 오전 0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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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택시 2대로 시작한 정도경영… 박인천 금호그룹 창업회장 40주기

박인천 금호그룹 창업회장의 정도경영이 재주목된다. /사진=머니투데이DB16일 박인천 금호그룹 창업회장이 타계한 지 40주기를 맞았다. 박 창업회장은 떠났지만 그가 남긴 도전 정신은 아들인 박찬구 금호석유화학그룹 회장을 통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박 창업회장은 1946년 마흔 여섯의 나이에 중고 택시 2대를 가지고 운수업에 뛰어들어 오늘날의 금호그룹을 일궈냈다. 그는 약품 배달로 모은 자본금 17만원으로 ‘광주택시’를 시작했다.

박 창업회장은 ‘정직, 근면 성실만이 살길’이라는 믿음으로 고객경영을 강조했다. 그는 확실한 자동차 정비와 정시(定時) 배차로 고객들의 호평을 받았다. 당시 여객업에 활용된 승용차는 대부분이 중고차였기 때문에 고장이 빈번해 지각이 잦았고 운행 중에도 고장나는 일이 많았다. 덕분에 광주택시는 광주의 명물로 자리잡았다.

2년 후 1948년 택시업의 성공을 발판으로 버스업을 개시했다. 박 창업회장은 자본금 1000만원을 투자해 ‘광주여객’을 설립했다. 광주여객은 사업 초기부터 철저한 운행시간 엄수를 통해 호평을 받았다. 특히 고객들의 편의를 위해 막차 시간이 지났더라도 차의 여유가 있으면 임시차를 통해 막차를 놓친 손님들을 태워 신뢰를 얻었다.

1960년에는 자본금 5000만환으로 삼양타이어공업주식회사(현 금호타이어)를 설립했다. 이듬해 타이어 생산을 개시했으나 품질 문제로 재무 부담이 가중됐다. 박 창업회장은 집념을 바탕으로 투자를 지속했고 군납업체로 선정되는 성과를 냈다. 사업이 정상궤도에 진입하면서 1974년 국내 최대 타이어 제조사로 성장했다.

1970년엔 금호실업을 설립하며 무역업에 뛰어들었다. 현재도 그룹의 이름으로 쓰이는 ‘금호'(錦湖)는 고인의 아호다. 성장세가 가속화되면서 1973년 6개사로 그룹체제를 출범시켰다. 1976년엔 금호석유화학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했다.

박 창업회장은 기업집단의 총수로 취임해 오늘 날의 금호그룹의 기반을 착실하게 다져놓았다. 그는 1984년 6월 16일에 서울 용산구 자택에서 향년 84세로 영면했다.

형제의 난이 촉발한 금호그룹 분리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그룹 회장(왼쪽)과 박찬구 금호석유화학그룹 회장. /사진=뉴스1, 금호석유화학박 창업회장 타계 후 금호그룹은 새로운 챕터를 맞이했다. 1988년 장남인 박성용 명예회장이 항공업에 진출, 그룹의 다른 한 축을 항공물류분야로 확대했다. 정부에서 추진한 제2 민영항공 사업자로 선정되면서 설립 6개월 뒤 사명을 아시아나항공으로 바꿨고 1990년대부터 아시아나항공을 필두로 수십개 계열사를 거느리게 됐다.

이후 형제경영 기조에 따라 2002년 박삼구 전 회장이 취임했다. 문제는 그가 그룹의 전통이었던 형제경영을 깨트리면서 불거졌다. 박 전 회장은 65세인 2010년에 동생 박찬구 석유화학 부문 회장에게 경영을 승계했어야 했지만 아들에게 경영권을 승계하려 했다.

박삼구 전 회장 체제 아래에서 금호그룹은 위기를 맞았다. 대우건설과 대한통운 인수 등 무리한 사세 확장으로 인한 차입금은 금융위기를 만나며 독이 됐다. 2009년 주력 계열사인 금호산업, 금호타이어 등의 재무구조가 악화돼 워크아웃(기업재무구조 개선 작업)에 돌입했다.

이를 지켜볼 수만은 없었던 박찬구 회장은 금호그룹에서 석유화학 계열을 분리 독립해 현재의 금호석유화학을 일궈냈다. 박찬구 회장은 보유하고 있던 금호산업 등 계열사들의 주식을 모두 처분하고 매각대금으로 금호석유화학의 지분을 늘려 2011년 석유화학 부문을 그룹으로부터 계열분리했다.

박삼구 전 회장은 금호그룹의 지배권을 되찾고자 하면서 몰락의 길을 걸었다. 그는 ‘그룹 재건 계획’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수천억원에 달하는 계열사 자금을 횡령하고 이를 개인 회사에 부당 지원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1심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고 현재 2심이 진행 중이다.

반면 금호석유화학그룹은 박찬구 회장 체제 아래서 성장을 거듭했다. 박찬구 회장이 취임하기 직전인 2009년 말 기준 6조6656억원에 달하던 차입금 규모는 1년 만에 2조4890억원으로 4조원 이상 줄었다. 박찬구 회장이 대대적인 재무개선안을 밀어붙인 결과다. 그 이후로도 전체 차입금 규모는 지속해서 줄어 2017년에는 2조원 이하, 지난해에는 6000억원대로 낮아졌다.

재계 관계자는 “박인천 창업회장의 도전 정신이 박찬구 회장을 통해 이어져 온 것”이라며 “박찬구 회장의 독립 결단 덕분에 회사가 지속 발전해 현재에 위치에 오를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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