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의 자유’는 절대선인가…타인 명예‧권리 침해 ‘속수무책’

데일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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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28 오전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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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 자유’는 절대선인가…타인 명예‧권리 침해 ‘속수무책’

악플 공격에 극단적 선택 내몰리는 유명인들

왜곡된 의혹 해소해도 여론 돌리기 힘들어

기업 타깃 악성 비난도 만연…이미지 타격으로 폐업 몰리기도

“표현의 자유가 타인의 권리 침해 말아야…법률 개정 시급”

악성 댓글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표현의 자유’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헌법과 하위법령, 각종 제도 등을 통해 여러 형태로 보장받는 기본권이다. 하지만 어떤 권리든 ‘절대선’화 되면 폭주를 유도하고, 폭주는 부작용을 낳게 마련이다. 무조건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집착이 무고한 피해자를 만드는 상황이 잇따르면서 사회적 갈등이 커지고 있다.

현실과 가상공간을 가리지 않고 개인이나 단체에 막대한 피해를 끼치는 사실 왜곡과 혐오 표현은 법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없다. 그럼에도 가해자들은 표현의 자유를 거론하며 처벌을 피해간다. 나아가 앞으로도 표현의 자유 뒤에 숨어 가해 행위를 지속할 권리를 보장받는다.

악의적 사실 왜곡으로 인해 누명을 쓰고 비난과 혐오의 화살을 맞는 피해자들은 계속해서 표현의 자유에 억눌려 가해자의 노리개가 돼야 하는 것일까.

표현의 자유가 남용되는 가장 심각한 공간은 온라인이다. 가해 행위에 큰 품을 들일 필요가 없는 반면 익명성 뒤에 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잘 돼서 배 아픈’ 유명 연예인이나 스포츠 선수는 좋은 먹잇감이다. 기분 내키는 대로 비난하고 떠오르는 대로 사실을 왜곡하는 악플러들로 인해 이미지에 타격을 입고 멘탈이 무너진다. 심지어 악성 댓글로 인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례도 종종 발생한다.

기업이나 단체를 향한 악플은 ‘감정’에 ‘이해관계’까지 더해진다. 상대를 비방하고 끌어내림으로써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는 도구로 악플이 종종 사용된다. 기업은 사실 여부를 떠나 구설수에 오르면 이미지와 실적, 주가에 큰 타격을 입는다.

한때 애완견 사료 사업으로 좋은 성과를 내며 시장의 주목을 받던 패션‧뷰티 기업 A사의 사례는 악플이 유망 기업 하나를 무너뜨릴 수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일부 소비자가 온라인상에 A사의 제품에 대해 유해 성분 이슈를 제기했고, 유해 성분 포함 여부에 대한 결론이 나지 않았음에도 불구, 해당 제품과 회사를 비방하는 댓글이 무수히 달렸다.

당시 스타트업으로서 돌발 상황에 대한 대처 경험이 부족했던 A사는 사실관계와 상관없이 사과문을 홈페이지에 게재한 뒤 사업을 잠정 중단했다. 사건 발생 이후 공신력 있는 6개 검사기관으로부터 ‘유해성분 불검출’ 판정을 받았으나 이미 상황은 돌이킬 수 없었다.

‘A사의 애완견 사료는 유해하다’는 낙인이 찍힌 상황에서 사업을 지속할 수는 없었다. 결국 사업 시작 8개월 만에 해당 브랜드를 폐업했다.

애완견 사료 사업을 접은 이후에도 A사에 찍힌 억울한 낙인은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았다. 사명을 변경하고 화장품과 비누 등 사료와는 상관없는 사업을 진행했지만 ‘유해한 애완견 사료를 만드는 기업’ 이라는 악플이 따라다니며 기업의 발목을 잡았다.

제주삼다수 QR코드 제품 이미지. ⓒ제주개발공사

업계 1위 기업도 댓글 피해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생수업계 1위 제주삼다수는 ‘축산분뇨 투기’ 사건에 휘말려 이미지에 타격을 입었다. 2017년 제주지역 일부 양돈농가에서 축산분뇨를 야산에 불법 투기한 사건을 두고 일부 악플러들이 제주삼다수와 연관지어 비방과 루머를 퍼트린 것이다.


당시 축산분뇨가 불법 투기된 지역은 제주삼다수 취수원과 거리가 멀었지만, 악플러들은 ‘돼지 똥물’ 등 자극적 표현을 써가며 실제 분뇨와 직접 연관돼 마시지 못할 물을 판다는 식의 근거 없는 악성 댓글을 달았다.

결국 회사측에서 축산분뇨 투기 지역과 취수원과의 연관성이 없다는 점을 증명하고 수질관리 과정을 공개하며 사태는 무마됐으나, 당시 제주삼다수가 입은 이미지 타격은 상당했다.

오프라인 상에서도 표현의 자유가 개인과 기업의 권리를 침해하는 상황이 종종 벌어진다. 특히 대기업들을 상대로 한 시위 행위는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 없이 무조건적으로 시위자에게 ‘약자’ 이미지가 덧입혀져 법과 여론의 과도한 보호가 제공된다.

주요 대기업 사옥 인근에서는 연중 내내 시위대들이 확성기를 이용해 극심한 소음 피해를 유발하고 있고, 허위 사실과 혐오 표현들로 가득 찬 불법 현수막과 천막들을 설치해 인근 지역을 오가는 시민의 안전을 위협한다. 해당 기업은 속수무책으로 브랜드 이미지와 신뢰도 타격을 감수해야 한다.

이를 단속해야 할 지자체와 경찰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시위대의 민원과 시위진압 행위에 대한 고소‧고발을 우려해 미온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서울 양재동 현대차그룹 사옥에 시위자가 설치한 불법 천막이 서초구청의 행정대집행으로 철거되는 데 무려 10년이 걸렸다. 그 이전까지 시위를 단속하려던 구청 직원들은 시위자의 민원과 고소‧고발에 시달려야 했다. 다른 대기업 사옥들 앞에서 벌어지는 불법 시위들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해외 시장에서 경쟁하는 대기업들은 사옥 앞 시위와 같은 소란행위가 글로벌 브랜드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이 된다는 점에서 대책이 요구되고 있지만, 집시법(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헌 판결 이후 지속된 입법 공백으로 인해 사실상 방치 상태다.

삼성 서초사옥 인근에 대형 확성기를 설치한 시위 차량이 주차돼 있다. 독자 제공

이처럼 표현의 자유를 내세운 불법‧탈법 행위가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고 생활환경을 위협하거나 기업에 심각한 피해를 끼치는 상황까지 치달으면서 그대로 방치해서는 안된다는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보장하면서 그로 인한 피해자 양산을 방치하는 것은 헌법에도 위배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우리 헌법은 ‘표현의 자유’뿐만 아니라, 타인의 명예와 권리도 동시에 보호하고 있다”면서 “과도한 ‘표현의 자유’로 인해 침해 받고 있는 국민과 기업의 명예‧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법‧제도적 조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실제, 우리 헌법 21조 1항과 22조 1항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규정하고 있다. 동시에, 21조 4항에서는 ‘표현의 자유’가 타인의 명예나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헌법은 권리와 그에 따른 책무를 동시에 부과하고 있다.

헌법 37조 2항은 또한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해 필요한 경우에 한해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악성 댓글로 인한 피해자를 보호하려는 국회 차원의 움직임도 있어왔으나 성과는 미미한 실정이다. 21대 국회에서 악성 댓글 규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다수 발의됐지만, 이 역시 집시법처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법안 논의가 지지부진했다.

좀 더 책임감을 가지고 댓글을 쓰자는 취지로 댓글 작성자의 ID를 공개하는 내용의 ‘인터넷 준 실명제’ 법안은 ‘표현의 자유’ 침해 논쟁에 휘말려 고전하다 우여곡절 끝에 소관상임위 법안소위를 어렵게 통과했지만, 그 후 3년 넘게 진척되지 못하고 있다. 오는 29일부로 21대 국회 회기가 만료됨과 동시에 이 법안은 폐기될 예정이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다가오는 22대 국회에서는 현실과 가상공간에서 과도한 ‘표현의 자유’로 인해 침해 받는 국민과 기업의 명예‧권리 보호에 주목하고, 구체적 해결 방안 모색을 위한 법령 개정을 신속히 추진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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