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 먹이는 할머니 마음으로”…바리스타로 여는 인생2막

뉴스1코리아
|
2023.11.25 오전 09:41
|

“손주 먹이는 할머니 마음으로”…바리스타로 여는 인생2막

23일 광주 동구 전남대학교 한 병원 앞 시니어 카페에서 늦깎이 바리스타가 손님에게 직접 내린 커피를 전달하고 있다. 2023.11.23/뉴스1 © News1 이승현 기자
23일 광주 동구 전남대학교 한 병원 앞 시니어 카페에서 늦깎이 바리스타가 손님에게 직접 내린 커피를 전달하고 있다. 2023.11.23/뉴스1 © News1 이승현 기자

“주문하신 생강차·유자차 나왔습니다. 좋은 재료로 정성껏 만들어서 정말 맛있을 거예요.”

23일 광주 동구 전남대병원 앞 한 카페. 점심시간을 앞두고 커피 원두 가는 소리와 함께 주름진 손과 희끗희끗 흰머리를 한 종업원이 밀려드는 주문을 소화하기 위해 바삐 움직인다.

분주한 틈에도 종업원은 손님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눈을 맞추고 상냥한 미소를 건네며 주문한 메뉴에 대한 설명도 덧붙인다.

음료를 건네받은 손님 또한 고개를 끄덕이거나 엄지를 치켜세우며 만족스러운 기색을 보인다.

어쩌다 커피를 내리는 시간이 지연되더라도 메뉴 주문대에 ‘음료 제조 시간이 오래 걸려도 양해 부탁드린다’는 안내 문구를 의식한 듯 어느 누구 하나 불만을 표출하는 이는 없다.

겉으로 보기에는 여느 카페와 다를 바 없는 곳이지만 이곳 종업원들의 평균 나이는 67세, 최고 연장자는 74세로 ‘늦깎이 바리스타’ 여성 18명이 일하는 곳이다.

광주 동구 시니어클럽 노인일자리 창출 사업 일환으로 이른바 ‘시니어 카페’로 불리는데, 이들에게 카페는 ‘제2의 인생’이라는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올해 8월부터 일한 바리스타 이미자씨(62·여)는 “간호사 퇴직 후 2년 간 경력단절을 겪는 등 일자리가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였다”며 “시니어 카페를 알게 돼 다시 사회로 나왔고, 그동안 잃었던 자신감을 되찾았다. 인생도 더욱 재밌어졌다”고 말했다.

이씨는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아직은 손이 느리지만 정성을 담는다고 생각해줬으면 좋겠다”고 미소지었다.

백반집을 운영하던 박숙자씨(63·여) 또한 새로운 분야에 도전했다.

23일 광주 동구 전남대학교 한 병원 앞 시니어 카페에서 늦깎이 바리스타들이 수제 유자청을 만들고 있다. 2023.11.23/뉴스1 © News1 이승현 기자
23일 광주 동구 전남대학교 한 병원 앞 시니어 카페에서 늦깎이 바리스타들이 수제 유자청을 만들고 있다. 2023.11.23/뉴스1 © News1 이승현 기자

그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사업장을 정리하면서 무료한 삶의 연속이었다”며 “하던 일이 아니라 두려웠고 새로운 걸 배우면서 시행착오도 있었다”고 토로했다.

박씨는 “하다 보니 익숙해지고, 삶에 활력도 생기고 있다. 집에서도 우리집에 ‘바리스타’가 있다고 응원해준다”며 “기회가 된다면 내년에도 계속 하고 싶다”고 의지를 드러냈다.  

이들은 하루 3~4시간씩 한달에 열번 가량 일을 하고 50만원을 받는다. 많은 돈은 아니지만 사회활동을 한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함께 하는 일을 즐기고 있다.

늦깎이 바리스타들은 ‘손주에게 준다는 할머니의 마음’으로 음료, 샌드위치, 디저트 등 카페 메뉴 대부분을 직접 만든다. 재료도 직접 선별해 사용한다.

특히 수제차는 해풍을 맞고 자란 무농약 고흥 유자와 단단하고 매끄러운 대추, 곧게 뻗은 더덕 등 ‘재료가 좋아야 맛이 좋다’는 할머니들의 철칙으로 직접 나서 시장에서 눈으로 보고 공수해오기도 한다.

생과일 주스에 사용되는 토마토, 디저트에 쓰이는 도라지, 호두 등도 마찬가지다.

시중에 있는 흔한 재료배합 대신 시니어들의 몇십년 간의 노하우를 담아 최적을 맛을 자랑하는 레시피로 수제청 등을 직접 담그고 있다.

대신 아메리카노 2000원, 호두파이 2500원, 수제차 4000원 등 인근 카페들에 비하면 가격은 저렴한 편이다.

23일 광주 동구 전남대학교 한 병원 앞 시니어 카페 주문대에 '느리더라도 정직하고 정성껏 만듭니다. 양해부탁드립니다'라는 안내문구가 붙어있다. 2023.11.23/뉴스1 © News1 이승현 기자
23일 광주 동구 전남대학교 한 병원 앞 시니어 카페 주문대에 ‘느리더라도 정직하고 정성껏 만듭니다. 양해부탁드립니다’라는 안내문구가 붙어있다. 2023.11.23/뉴스1 © News1 이승현 기자

최고의 재료를 쓰되 저렴한 가격, 훌륭한 맛 등이 입소문 나면서 인근 병원에서 단체 주문이 이어지고, 매일 오는 단골손님도 여럿이다.

매일 이곳을 찾는다는 노정오씨(83)는 “다른 카페, 다방에 가면 가격이 부담스러웠는데 이곳은 합리적인 가격에 훨씬 맛이 풍부한 차를 마실 수 있다”며 “주변 지인에게도 알리면서 매일같이 찾아오고 있다”고 전했다.

전성남 광주동구시니어클럽 관장은 “매장 수익금은 어르신들을 위해 사용된다”며 “노년기 인생을 더 적극적이고 자기 자신을 사랑해 지역사회에서 이웃과 함께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pepper@news1.kr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1
0
+1
0
+1
0
+1
0
+1
0

Leave a Comment

랭킹 뉴스

실시간 급상승 뉴스 베스트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