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라 말해도?”…입양인의 질문, ‘죽음’ 담던 사진작가 움직였다

뉴스1코리아
|
2023.05.07 오전 09:47
|

“한국인이라 말해도?”…입양인의 질문, ‘죽음’ 담던 사진작가 움직였다

박찬호 작가가 지난달 10일 국회에서 ‘해외입양 예술가 작품전시회’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뉴스1

“한국말도, 한국문화도 몰라요. 이런 저를 한국인이라고 말해도 될까요?”

사진작가 박찬호씨(55)가 전 세계 팬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한 해외입양인에게 받은 질문이다.

당시 박 작가는 “당신은 엄연히 한국인”이라며 “당당하게 말해도 된다”고 답했다. 그러나 박 작가의 머릿속에서는 그 질문이 쉬이 떠나지 않았다.

그는 ‘진정한 답’을 찾기 위해 직접 그들에게 향했다. 그동안 무관심했던 해외입양인들과의 인연을 시작한 것이다.

이윽고 박 작가는 ‘해외입양인들과함께하는문화예술협회(KADU)’를 만들고 전시회를 추진했다. 준비기간만 1년이 걸렸다.

지난달 10일부터 지난 2일까지 한달간 국회와 인사동거리에서 열린 ‘해외입양 예술가 작품전시회’가 그 결과물이다. 11개국 28명의 해외입양인들은 ‘모국’을 주제로 해외 입양 과정에서 겪은 아픔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작품들을 전시했다.

전시회는 성공적이라는 평가다. <뉴스1>은 지난 3일 해외입양인들을 위해 어떤 자산과 인맥도 없이 이번 행사를 이끈 박 작가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2018년 뉴요타임스(NYT)에 실린 박찬호 작가 사진.

◇’죽음’을 담던 카메라 끝에서 만난 해외입양인들

박 작가는 ‘죽음’을 주제로 10여년간 전국의 굿행사 등을 찍은 작품들로 해외에서 ‘리턴’이라는 이름의 전시회를 수차례 열 정도로 성공했다.

뉴욕타임스(NYT)는 2018년 ‘죽음의 공포, 그리고 죽음을 둘러싼 의식을 사진에 담다(Fearing Death, and Photographing the Rituals That Surround It)’라는 기사로 박 작가의 작품들을 조명하기까지 했다.

박 작가는 사진을 통해 해외 팬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입양인들과의 인연을 시작하게 됐다.

그는 “처음 ‘한국인이라고 말해도 되나요’라는 질문을 들었을 때 생각지 못한 주제여서 당황했다”며 “당당하게 한국인이라고 말하라고 했지만 그 말에 대한 책임을 져야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후 박 작가는 SNS를 통해 수많은 해외입양인들과 인연을 맺고 그들의 안타까운 이야기를 들으며 이들에 대한 관심을 더욱 키웠다.

국회에서 지난달 10일부터 보름간 열린 ‘해외입양 예술가 작품전시회’에서 박찬호 작가가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 뉴스1

◇촛불로 시작한 위로…’모국’ 그리워하는 입양인들을 위한 전시회 열다

‘고아로 서류가 조작돼 수수료를 받고 해외로 입양된 아이들’

박 작가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수많은 입양인들에게 들으며 그들의 현실과 마주했다.

이 과정에서 여전히 많은 입양인들이 한국을 그리워하고 궁금해한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박 작가는 한국의 문화를 이들에게 알려주고 이들을 위로해주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시작한 활동이 입양인들을 위한 촛불 켜기 행사였다.

박 작가는 “사진을 찍으며 인연을 맺은 전통굿 전수자들과 함께 입양인들을 위로하기 위해 촛불행사를 시작했다”며 “생각보다 훨씬 많은 입양인들이 이 행사에 관심을 갖고 위로를 받았다”고 말했다.

입양기관에서 원치 않는 한국 이름을 받았거나 한국 이름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한국 이름도 새로 만들어줬다.

해외입양인들과 교류해오던 박 작가는 “한국에서 내 작품을 전시하고 싶다”는 한 입양인의 부탁으로 이번 전시회까지 기획했다.

박 작가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지만 하나하나 준비하다 보니 어느새 여기까지 오게 됐다”며 “준비 과정은 힘들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줘서 감사했다”고 말했다.

박 작가의 노력은 약 1달의 기간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전시회를 찾아 해외 입양인들이 겪은 현실에 분노하고 공감할 수 있게 했다.

실제 전시회를 찾은 사람들은 “살아줘서 고맙다”, “그동안 무관심해서 죄송하다”, “앞으로라도 행복했으면 좋겠다” 등의 글을 남기며 해외입양인들과 교감했다.

지난달 21일 국회 제2소회의실에서 ‘해외입양 70년, 해외입양을 다시 생각한다’를 주제로 진행된 포럼에서 박찬호 작가가 입양인들과 함께 있는 모습.© 뉴스1

◇”이제는 입양인들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본업이 사진작가인데도 박 작가는 그동안 해외입양인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지 않았다.

박 작가는 “앞서 한국을 방문한 입양인들이 이따금 사진을 찍어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지만 거절했다”며 “그들의 삶을 온전히 알지 못하면서 한장의 사진으로 이들의 모습을 담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이번 행사를 치르면서 ‘이제는 카메라에 이들의 모습을 담아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조심스레 해 봤다”며 미소를 지었다.

박 작가는 “본업에 충실하면서도 해외입양인들을 위로하고 공감할 수 있는 활동은 계속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의 시선으로 카메라에 담은 해외입양인들의 사진이 사회에 큰 울림을 줄 날을 기대해 본다.

khan@news1.kr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1
0
+1
0
+1
0
+1
0
+1
0

Leave a Comment

랭킹 뉴스

실시간 급상승 뉴스 베스트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