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난 딸 용서해”…2년 만에 밝혀진 극단적 선택 이유[사건의 재구성]

뉴스1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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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15 오전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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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난 딸 용서해”…2년 만에 밝혀진 극단적 선택 이유[사건의 재구성]

© News1 DB

“못난 딸 용서해줘 엄마”

상사에게 지속적으로 괴롭힘 당한 골프장 경기보조원(캐디) A씨가 극단적 선택을 하기 보름 전 엄마에게 이 같은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A씨의 메시지에는 상사의 괴롭힘 정황이 드러나 있었다. “나한테 유독 심한 사람이었고 내가 갈 곳 없는 거 알고 더 막 대하는 걸로밖에 안 느껴질 정도로 사람을 쥐락펴락해온 사람이야. 나는 평생 못 잊을 거야 아마”라고 호소했다.

2019년 7월부터 경기 파주의 건국대 학교법인이 운영하는 골프장에서 캐디로 재입사한 A씨는 이듬해 9월 극단 선택으로 사망했다. 배경에는 ‘캡틴’으로 불리는 상사 B씨의 폭언과 모욕이 있었다.

B씨는 다른 캐디들도 들을 수 있는 무전으로 A씨에게 “뚱뚱하다고 못 뛰는 거 아니잖아”, “오늘도 진행이 안 되잖아 오늘도 또 너냐”는 등 수시로 외모를 비하하거나 공개적으로 질책했다.

캐디들은 B씨로부터 질책받으면 ‘네 또는 죄송합니다’라고만 대답해야 했고 그렇지 않으면 추가로 질책 또는 벌칙을 받았다.

A씨는 몇 번이나 주변 동료들에게 죽고 싶다고 얘기했다. 2020년 8월 캐디들이 가입한 인터넷 게시판에 ‘캡틴님께’라는 항의 글을 올렸지만 곧바로 삭제되고 카페에서도 탈퇴당했다. 해당 카페는 근무에 필요한 자료, 근무수칙, 출근표 등이 게시되므로 접속하지 못하면 근무를 할 수 없었다. 사실상 해고 통보와 마찬가지였다.

이후 A씨는 여러 차례 극단 선택을 시도했고 보름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A씨의 죽음에 대해 골프장 측은 “직장 내 괴롭힘이 아닌 개인 간의 갈등으로 일어난 일”이라고 주장했다.

정부기관도 A씨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았다. A씨의 유족이 고용노동부에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했지만 노동부는 “캐디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다”고 판단했다.

근로복지공단도 A씨가 ‘산재보험 적용 제외 신청서’를 작성했다는 이유로 산업재해를 인정하지 않고 유족의 유족급여와 장의비 청구를 거절했다.

그러나 법원의 판결은 달랐다. 지난 2월 15일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민사1부(판사 전기흥)는 캐디 A씨의 유족이 가해자 B씨와 건국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B씨와 건국대 법인은 공동하여 유족에게 총 1억7000만원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직장 내 괴롭힘을 인정하고 감독에 상당한 주의를 하지 않은 사용자에 책임을 물은 것이다.

재판부는 “B씨는 캐디들을 총괄, 관리하는 지위상 우위를 이용해 A씨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고 근무 환경을 악화했다”며 직장 내 괴롭힘을 인정했다. 이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노동자가 아닌 특수고용노동자에게도 직장 내 괴롭힘을 법원이 인정했다는 의미가 있다.

재판부는 건국대 법인에 대해 “B씨의 사무감독에 상당한 주의를 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B씨의 불법행위에 사용자 책임을 부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bcha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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