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B 전성시대, 제조·유통이 ‘미묘한 줄타기’하는 이유

머니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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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25 오전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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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B 전성시대, 제조·유통이 ‘미묘한 줄타기’하는 이유

#”우리 제품은 올렸는데 PB 제품 가격은 올릴 수가 없어요.” 한 식품업체의 한탄이다. 원재료, 인건비, 물류비 인상으로 식품업체들이 지난해부터 가격을 줄인상했지만 PB 제품은 쉽지 않다. PB 가격은 유통업체와 합의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성비와 품질을 갖춘 PB(자체브랜드) 제품들이 장바구니 물가 안정이 기여하고 있지만 유통업체와 제조업체 상생을 위해선 숙제가 있다. PB ‘가격 경쟁력’을 위해서는 제조업체가 NB(제조사 브랜드) 대비 수익성을 일부 포기할 수밖에 없다. 유통업체들은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하 하도급법) 적용으로 제조업체와의 유연한 계약이 어렵다고 토로한다. 유통업체와 제조업체는 공생을 위한 미묘한 줄타기를 지속하고 있다.

물가 급상승하는데…PB 가격 올리기 어려워

PB 전성시대, 제조·유통이 '미묘한 줄타기'하는 이유

생존이 기로에 서 있다 PB 납품으로 기사회생하는 중소 제조업체들도 있지만 중견 제조업체들은 PB에 보수적이다. PB 제품 생산으로 공장 가동률이 올라가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PB 사업 자체의 수익성이 낮다보니 ‘대박’을 터뜨릴 가능성도 낮기 때문이다. PB 사업에 합류하는 제조업체들이 대부분 업계 1위보다는 2~3위 사업자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노브랜드 ‘라면한그릇’의 경우 2016년에 출시돼 아직까지 1980원(5개들이)에 판매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NB(제조사 브랜드) 라면 5개들이 한팩이에 4000원대인 것과 비교된다. ‘라면한그릇’의 제조사는 팔도다. 팔도는 2021년 9월 왕뚜껑·도시락 등 라면 가격을 평균 7.8% 올렸고, 지난해 10월에도 라면 가격을 평균 9.8% 올렸다.

홈플러스도 지난해 말 NPB(공동기획상품)인 짜장라면 이춘삼을 출시해 한팩(4개들이)에 2000원에 판매하고 있다. 이춘삼은 홈플러스에서 1~2월 약 56만봉이 팔리며 농심 신라면을 제치고 홈플러스에서 가장 많이 팔린 라면 1위에 올랐다. 그러나 판매가가 농심 짜파게티의 절반 수준이다보니 제조업체에 돌아가는 수익도 적은 편이다. 이춘삼의 제조업체는 삼양식품이다.

인구 감소로 수요가 줄어 들고 있는 우유는 상황이 더욱 어렵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서울유유(흰 우유 1ℓ)의 전국 소매점 평균 가격은 지난해 9월 2700원대에서 11월 2800원, 올해 2900원대로 뛰었다. 대형마트 PB 우유는 올 초 평균 10% 안팎으로 가격을 올렸지만 현재 2100~2390원 수준에서 판매되고 있다. 한 식품업체 관계자는 “원재료 값이 올라도 유통사와 협의 없이 임의대로 올리기 어려운 구조”라고 말했다.

PB에 하도급법 적용돼 다양한 경영 전략 어려워

PB 상품 제조사들이 수익성을 고민하고 있다면 유통업체들은 법적 불확실성이 걱정거리다. 양질의 상품을 저렴하게 공급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경영전략이 필요하지만, 자칫 유통업체의 ‘갑질’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도급법 제11조에 따르면 유통업체는 정당한 사유를 입증하지 않는 한 하도급대금을 감액할 수 없다. A 유통업체가 판매 물량을 1만개에서 2만개로 확대하면서 제조업체에게 단가를 낮춰달라고 요구하는 것도 법적으로 문제될 소지가 있다는 설명이다. 이 외에도 유통업체는 발주와 입고 시점이 달라 생기는 단가 차이, 판촉 행사로 인한 단가 인하 요구 등을 할 수 없다.

또 하도급법 제12조2에 따르면 유통업체는 정당한 사유 없이 수급사업자에게 자기 또는 제3자를 위해 금전, 물품, 용역, 그 밖의 경제적 이익을 제공하도록 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된다. A 유통업체가 품질관리를 위해서라도 B 제조업체에게 C 업체가 수입하거나 만드는 재료를 사용하도록 요청해서는 안된다는 얘기다.

반면 하도급법은 외국법인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외국법인이 국내에 영업소를 두더라도 하도급법 대상자가 아니다. 유통업체 입장에서는 해석하는 주체에 따라 애매모호할 수 있는 ‘정당한 사유’를 입증하려고 노력하기보단 법 대상이 아닌 외국법인과의 협력을 꾀할 여지가 있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e커머스 등 유통 경로가 다양해지면서 특정 유통업체가 갑질을 하긴 어려운 상황”이라며 “복잡한 법을 피하기 위해 외국 제조업체들과 협력을 강화한다면 국내 중소기업들에게도 득이 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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